작은방 사랑방 그리고 마당에 있던 다른 홍어 배를 타는 사람들이 갑자기 몰려들었다. 왜냐하면 홍어가 잘 잡히는 장소에 관한 정보를 안다는 것이 목숨을 건 흑산 홍어잡이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날 너둔에 떠있는 대어호에는 홍어가 한동(주: 당시 흑산도에서 홍어는 수놈은 두 마리를 한 마리로 치고 있었다. 10마리를 한 뭇이라고 하고 100뭇을 한동이라고 한 것으로 기억된다. 따라서 한동은 천마리를 의미한다.)정도 실려 있다고 했다.

어느 정도의 바람에는 바다에서 견디며 바다에 빠뜨려져 있는 주낫을 마저 당겨서 만선을 해 가지고 오려고 했다. 그러나 갑자기 몹시 강하게 불어 닥친 바람 때문에 주낫을 끊지 않으면 죽는다고 느꼈기 때문에 선원들의 의견을 모두어 선장의 결단으로 뱃머리를 흑산을 향하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세찬 북풍에 따라 파도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굽이치기 마련이다. 바람을 바꾸어 놓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북쪽으로 거슬러 갈 수는 없다. 5시간 정도 흑산도를 향하여 파도를 따라 남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아니 파도에 밀려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치(키)를 잡은 그의 큰형의 손이 떨리고 산더미 같은 파도에 배가 거꾸로 서는 느낌에 아우성치고 말았다.

"아이고매. 밖에 나와 물 퍼라! 살려거든 물을 퍼라! 닻을 거꾸로 매어 뒤에 빠쳐 닻줄을 있는 대로 주고 묶어라.(주: 홍어가 선장실 앞 배의 앞부분에 실려있고 배 뒤에서 덮치는 파도가 너무 높기 때문에 배가 거꾸로 설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배의 뒤 부분에 많은 짐을 실은 효과를 내도록 배 뒤에 닻이 걸리지 않도록 거꾸로 매어 긴 닻줄과 함께 바다에 퍼내려 배가 차고 가는 것이다.)

앞도 뒤도 옆도 안 보이는 밤중, 다만 배 선장실 앞에 전등만이 배 위에 물이 넘실거리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흔들거리는 배에서 바다에 튕겨지지 않도록 허리에 줄을 묶고 주사기와 같은 원리로 만들어진 물푸게로 어기어차 두손 잡아 배에서 물을 계속 뽑아내다가 도저히 안되겠기에 잡은 홍어를 바다에 버리기에 이르렀다.

인간이 살려고 하는 욕망, 죽을 둥 살 둥을 모르고 살아가려는 욕망, 살아가기 위하여 생명을 건 흑산도 홍어잡이. 그래서 흑산도에서의 삶을 위하여 흑산 바다에서의 삶에 대한 담보의 한계가 보일 순간이다. 사랑을 위하여 사랑을 버리고 삶을 위하여 삶을 버려야 하며, 소유를 위하여 무소유를 택할 수 밖에 없는 순간이 흐르고 있었다. 물에 빠져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하는 욕망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본능만이 아니라 본성도 되어야 한다고 요청하고 싶다. 우리가 무엇이고 요청한다는 것은 인간의 삶에 관한 현상이다. 인간의 삶이란 욕망의 연속이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이성과 감성의 역할 등이 요구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성으로만 자율적으로 규격지어진 것만도 아니요 감성적으로만 타율적으로 움직여지는 것만도 아니다. 그래서 인간이 살아 있는 한 욕구하고 요청하는 등의 모든 표현을 '원한다'고 하는 하나의 표현으로 압축되는 운명 앞에 서 있다. 인간은 우리들에 의하여 가정된 도덕 법칙과 자연법칙이라는 두 법칙이 빚어내는 긴장의 장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그런 존재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이 두 법칙의 한계를 결코 고정시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인간을 고정적으로 볼 수 없고 인간 즉 인간의 삶을 인간의 능력에 알맞은 욕망의 과정 자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캄캄한 어둠 속 망망대해에서 파도에 시달려 곤두박질치며 밀려 떠가야 하는 일엽편주, 그의 동네에서 그렇게 크게만 보이던 대어호는 초등학생인 그의 동네 어깨동무 친구들의 너둔에서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던 댓잎으로 나뭇잎에 지나지 않았다. 그 나뭇잎 배에서 선장은 한 덩이의 거대한 파도가 배의 옆구리를 치는 순간이면 배가 뒤집히기 때문에 한 순간이라도 긴장을 풀 수 없다. 선원들은 번갈아가며 어깨가 휘도록 주사기로 배에서 물을 뽑듯이 배애서 물을 뽑아내며 생명을 시험하는 밤을 보내야 한다. 왜냐하면 배가 물에 잠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런 상황에서 이성과 감성을 구차스럽게 구분하여 삶을 삶답지 않게 보일 필요는 없다. 오로지 나뭇잎 배에 엉겨붙어 삶과 반대인 죽음을 앞두고 삶을 진지하게 원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원이 없다면 삶은 끝이 된다. 여기서 원은 욕구, 욕망, 요청, 바람, 의심 등 모든 의욕 사항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 의욕에 따르기 위하여 활동함으로써 또 의욕은 발생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욕구가 발생되지 않으며 숨마저 멈추어지는 상태가 되어 진정한 삶의 상태는 될 수가 없을 것이다.

바람 부는 놀(파도)위의 돈방오리처럼 옵목옵목 파도를 타며 물 속을 끼어 온 사투의 6시간. 이 물대에, 이 방향으로, 이 바람에 대어호의 속력이면 30분 후에 가상구덕(주: 다물도 바로 윗쪽 즉 북쪽에는 심섬, 대섬, 갖대섬 등 몇개의 무인도가 있다. 갖대섬 옆에 촛대 같이 생겼다고 하여 요즘음 그 바위를 촛대바위라고 하는데 그 근처의 바다를 가성구덕으로 나는 이해하고 있었다. 가상구덕 근처에서는 전부터 배들의 사고가 많아 사람 많이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이 근처에는 섬들이 있기 때문에 같은 바다이지만 물이 쓰거나 들 때에는 바닷물이 빠져나가는 대목이 되므로 물살이 세다. 하물며 바람이 세게 부는 경우에는 다른 바다보다 훨씬 하얀 색이 짙어 허옇게 보이는 곳으로 파도가 겉잡을 수 없이 몰아치는 곳이다. 더구나 앞이 안보이는 밤이나 안개낀 날, 잘못 항해하다가는 암초에 부딪쳐 파선 될 수도 있는 곳이다. 설령 암초에 부딪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삼각 파도에 배가 깨지는 수도 있다고 했다.)에 도착되리라고 생각되어 전체의 선원들이 긴장하고 있었다. 드디어 파도에 배가 우지끈 시달리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기적을 울려 산의 메아리를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파도 소리에 메아리가 잘 들리지 않아 선원들은 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어두운 폭풍의 밤이 흐르고 있었다.

흑산 홍어 배보다도 몇 배다 더 큰 배가 밀려오는 파도를 따라 바다에 박힐 듯이 앞으로 푹 기울었다 일어나는 경우를, 목포에서 중학교 다닐 때 어린 다촌 용일이는 남영호를 타고 고향에 오면서 흑산 바다에서 몇 번은 경험했다. 한 번은 파도가 너무 세어 도초에서 흑산을 갈지자로 반정도 왔다가 여객선 기관실에 물이 잠겨 다시 도초로 돌아간 적이 있다. 흑산을 며칠이고 못 들어간 터에 사람이 많아 선실 객실이 만원이면 손님들을 선상에 입석으로 태웠다. 흑산 바다에 와서 파고가 너무 높으면 배칸 밖에 있는 승객들에게 로프를 주어 잡게 했던 때를 그는 기억하고 있다. 왜냐하면 배에 고정된 줄을 잡지 않으면 파도로 인하여 배가 흔들려 사람이 바다로 튕겨나갈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요즈음 같으며 태풍 주의보로 출항이 금지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향과 부모님을 뵙기 위하여 흑산 가는 여객선을 타야만 했다. 흑산도를 오가는 정기 여객선 남영호가 바람이 불어 운행을 못해도 그의 집 배 대어호는 목포를 오갈 수 있다고 동네 아저씨들은 말했다. 왜냐하면 여객선은 어선보다 크다고 할지라도 객실 등이 이층 삼층으로 되어 있어 파도에 선체가 더 뒤뚱거리기 때문이다. 같은 어선이라고 할지라도 파도가 센날 대어호를 타보면 확실히 대어호가 파도를 잘 타도록 지어진 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대어호 선원 수입이 다른 배 선원 수입도다 훨씬 많았기 때문에 동네 선원이라면 대어호 선원이 되기를 희망했다.

선원들 중에서 제일 나이 어린 하장(주: 선원들의 식사를 지어드리고 심부름도 한다.)이 물을 뽑아내고 선실로 들어오려다가 대어호 기적소리의 메아리 소리를 듣고 외치기 시작했다.

"메아리요. 메아리!"

갑자기 슬로우종이 기관실에 울리고 배는 천천히 떠가기 시작했다. 파도는 더욱 심해지고 선원들은 어둠 속에서 손전등을 이리저리 비추며 소리치고 있었다.

"갓녀가 어디냐? 아래 갓녀가 어디냐?"

배는 거의 무동력으로 떠가고 있었다. 마침내 동이 터오고 있었다. 갑자기 갑판장이 외쳤다.

"갓녀다."

선원들은 웃가녀 아래갓녀 사이로 대어호가 떠가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외쳤다.

"우리 선장님 최고야!"

계속 키를 잡고 삶과 죽음의 길목에서 파도와 싸우던 선장인 그의 큰형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는 항해사에게 키를 맡기고 나왔다. 정확히 다물도로 찾아든 것이다. 만약 잘못되어 흑산을 벗어나 버리면 비록 흑산이 보인다손 치더라도 바람이 불고 있는 한 그 거대한 파도를 거슬러 올라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야말로 바람 부는대로 물결치는대로 가야할 입장에 놓인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여 자기가 타고 있는 배가 어디로 떠가고 있는가를 알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디로 가야함을 욕구해야하기 때문이다. 내가 어디에 있는 줄을 모르면 내가 어디로 가야함을 욕구할 수 없다.

다물도 산이 정확이 보였다. 기관실에 빨리 가지고 하는 싸인의 종이 요란하다. 오색기가 세워지고 기적소리가 계속되었다. 이 기적소리는 메아리를 요구하는 기적소리가 아니라 대어호가 웃바닥에서 돌아온다는 신호이다. 그러나 그 신호는 그 험한 파도 속에서도 대어호가 죽지 않고 돌아온다는 외침이 될 수도 있고 홍어를 만선으로 싣고 온다는 자랑의 표시일 수도 있다. 그의 큰형은 불현듯 긴장이 약간 풀린 듯하며 마음 한 귀퉁이에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기계가 고장나지 않는 한 살겠구나!"

다물도 북쪽에 위치한 칠성굴 근처 절벽에 북쪽에서 밀려드는 파도가 부딪혀 하얀꽃을 피우고 있었다.

"다물도 너둔(항)까지 들어가기 전에는 결코 안심할 수 없소."

만약 배의 기계가 고장이라도 나면 파도에 배가 밀려 다물도에 다 와서 다물도 바위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선장뿐만 아니라 모든 선원들의 옷이 물에 흠뻑 젖어 있었다. 아니 대어호 배 몸뚱이 전체가 잠수함처럼 물을 끼어 온 듯 젖어 있었다. 다물도 너둔에 들어온 대어호는 갑자기 엄마품으로 들어온 아이와 같이 너둔에서 재롱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고 하는 곳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꽹과리, 장고, 징을 어느새 집어들고 깨져라고 치는 것이었다.

그때 초등학생인 그는 선장인 그의 큰 형님의 말을 지금도 이처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이렇게 죽을 둥 살 둥을 모르고 흑산홍어를 잡았던 그의 큰 형님과 같은 분들이 없었다면 결코 '흑산홍어'라는 이름은 탄생될 수 없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