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 E:125°26′ N:34°41′
17.751 Km2  


크게보기흑산도는 목포와 홍도를 이어주는 징검다리 구실을 하는 해상교통 중심지로, 근해에서 조업하는 선박의 대피소 혹은 정박지 구실을 하고 있으며, 요즘에는 중국과 일본 어선까지 접안하는 국제항구의 역할까지 담당한다.
바닷물이 푸르다 못해 검어서 흑산도라 불리는 섬, 특히 천연기념물 170호로 지정된 흑산도는 섬 주변에 기암괴석과 해안동굴이 널려 있으며, 섬 전체가 절묘한 비경이다. 예전에는 조기, 고등어, 삼치 파시가 성황을 이루던 곳이기도 하다.
크게보기흑산도에는 다산 정약용의 형 약전이 천주교에 관련되어 15년간 유배생활을 한 곳이기도 하다. 사리에서 머물던 약전은 남서해안 바닷고기와 해산물 155종을 채집하여 그 생태를 담은 어류학 총서 '자산어보'를 집필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강화도 조약에 관한 상소로 면암 최익현이 이속에서 유배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흑산도는 홍어의 본 고장인데, 이 지역에서는 홍어를삭히기 위해 오지 항아리 속에 넣거나 부뚜막 위에 놓아 사흘쯤 묵힌다. 잘 삭은 홍어에 막걸리 한 잔 걸치는 '홍탁'은 이곳의 별미다.
흑산도에는 예리 선착장이 있고 흑산도, 다물도, 대장도, 소장도(이상 전남 신안군)는 서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 자료출처 : 한국도서백서(발행 : 내무부 / 연구 및 편집책임 : 신순호)


 
초쾌속선 1시간 40분
골드스타, 뉴골드스타, 남해퀸, 남해스타, 남해프린스가 07:50, 13:20, 14:00)
문의전화
(주)동양고속 061-243-2111
(주)남해고속 061-244-0005,244-9915
*(주)동양고속,(주)남해고속 교대 출항
 

흑산 예리항에서 각지역까지 버스 5대가 운행되고 있으며 택시도 10대 정도가 있다. 택시는 행선지를 미리 말하고 요금을 정한 뒤 가는 것이 좋다. 택시로 섬을 일주하는 데는 약 2시간 40분에서 3시간 정도가 걸리며 요금은 80,000원 선이다.
문의 : 개인택시 이성수 275-9775, 동양택시 275-9744, 부속섬 운항은 흑산도에서 가거도, 상태도, 하태도, 만재도를 10시에 출항하며, 가격은 섬마다 다르고 소요시간은 불규칙적이다. 특히 흑산도에서 홍도는 성수기 증편 운항을 하고 있으며 30분 거리에 있다.

 


1833(순조33)~1906년(광무10년) 조선 고종때의 문신, 의병장으로 경기도 포천 출신이며,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를 반대하는 항일투쟁으로 호소하고 다음해 6월 전라북도 순창에서 의병을 일으켜 항쟁하다 쓰시마섬(대마도)로 유배되어 쌀 한톨, 물 한모금도 적이 주는 것이라 하여 단식끝에 1906년 11월 17일 순절하였다. 1876년(고종13) 강화도 조약 체결을 역설하다 흑산도에 유배되었고, 흑산도 진리에 일심당(一心堂) 이란 서당을 세워 후학을 양성하였고 천촌리로 옮긴 후에도 서당을 지어 후학을 양성하였다.


1758(영조34)~1816(순조16) 조선 정조때의 학자, 천주교 전도자, 다산 정약용의 형으로 경기도 廣州출신이며, 남인계통의 학자로 서양학에 입교 후 천주교 전도에 몰두하였다. 순조 즉위 천주교도 탄압 1801(순조1년) 신유사욕(신유박해)때 흑산도 유배 후 1816년 牛耳島에서 사망, 유배생활 15년동안 물고기, 해산물 등 바다생물 155종을 채집하여 명칭, 분포, 실태 등 어류실체를 조사함으로써 어족연구의 귀중한 자료인 "자산어보"를 저술, 유배당시 사리에서 "復性齋"란 서당을 개설 후학을 양성하였다.


선착장 근처 지리 마을 당산에는 처녀당이라 불리는 성황당이 있다. 흑산도에 옹기를 팔러 온 청년에게 연정을 품은 처녀귀신이 배가 출항하려 할 때마다 풍랑을 일으며 결국 총각을 섬에 붙들어 두게 된다. 남겨진 홍각은 당산나무에 올라 고향을 그리며 피리를 불다가 죽었다.
성황당 아래 50m 지점에는 천연기념물 제361호로 지정된 초령목이 있다. 수령이 320년쯤 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이 초령목은 가지를 꺽어 불전에 놓으면 귀신을 부른다 해서 일명 '귀신나무'로도 불린다.

 


읍동마을 뒷산 정상 8부 능선에 반달 모양의 성이 구축되어 있어 반월성이라 부르고 있다. 해적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것이라 하는데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 입도 당시부터 누군가에 의해 쌓아진 성터라 하며 뒷편이 바다이기에 성으로써 자연적인 조건이 좋은 성터였다라고 말한다. 그곳에 옛날 적을 막아낸 전투의 흔적으로 불리는 암벽(피바위)이 있다.


바다수면에 바위돌로 만들어진 대문인데 이 대문을 해초선이 드나들며 낚시대를 드리우고 석주에 앉아있는 어부들도 적지않아 한철 좋은 풍경이다. 모양새가 코끼리와 같다 하여 코끼리 바위라고도 불리우며, 구멍바위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