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강진군


다산초당은 우리나라에서 손 꼽히는 대학자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이 유배 18년 중 10여년동안 유배생활을 했던 곳이다. 다산초당은 강진만이 한눈에 굽어보이는 만덕산(408m)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다산 정약용은 진주목사를 지낸 정재원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28세 때 대과에 합격하여 규장각 초계문신(抄啓文臣), 경기도 암행어사, 황해도 곡산부사 등을 역임하면서 경세사상을 실천하여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다. 그러나 1801년 신유교옥(辛酉敎獄)으로 장기로 유배되었고, 황사영 백서 사건으로 강진에 이배되었다.
다산초당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그는 후진을 가르치고 저술에 전념하여, 바로 이 곳에서 자신의 애국애민 사상이 스며있는 책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500여권에 달하는 저서를 완성하였다.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여진 다산초당은 '유배생활'을 했던 공간이라는 느낌보다는 안락한 안식처 같은 느낌을 갖고 있다. 물론, 처음에는 말 그대로 띠 집이어서 이후에 터를 확장시키고 가꾸기는 했지만, 멋진 나무들에 안겨 있는 다산초당을 보면, 쓸쓸한 유배지의 안타까움보다는 옛 선현의 고고한 인품이 묻어나온다.

다산초당 근처에 있는 백련사의 혜장(惠藏)스님과 교유하면서 차생활을 시작한 다산은 우리나라 최초로 다신계(多信契)와 다신계 절목을 만들어 독창적인 차문화를 펼쳐나가기도 했다.

다산초당에는 다산 정약용이 '정석(丁石)'이라는 글자를 직접 새긴 '정석바위', 가뭄에도 마르지 않아 늘 차를 끓여 마시던 약수 '약천', 차를 끓였던 반석인 '다조', 연못 가운데 조그만 산처럼 쌓아놓은 '연지석가산' 이라는 다산사경 등이 남아있다. 다산초당의 왼편으로 걸어가면 넓은 들과 바다가 펼쳐져, 다산이 가족들을 그리며 아파했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서울 - 강진 : 1시간 간격 일일 10회 운행(5시간 20분 소요)
부산 - 강진 : 30분 간격 일일 18회 운행(5시간 소요)
광주 - 강진 : 30분 간격 일일 32회 운행(1시간 40분 소요)
목포 - 강진 : 30분 간격 일일 20회 운행(50분 소요)


강진버스터미널 앞 → 해남 완도 방면 18번 국도 →(2km)→ 강진군 학명리 추도 3거리(좌회전) → 도암 방면 군도 2호선 →(7km)→ 다산초당


강진읍정류장 → 정다산유적지 → 도암면' 을 왕복하는 군내 버스 이용
하루 11회 운행, 20분 소요 (첫차 06:40, 막차 19:20)

 


죽각(竹閣)서편 바위가 병풍같으니
부용성(芙蓉成)꽃주인은 벌써 정씨(丁氏)에게 돌아왔네
학이 날아와 그림자지듯 이끼무늬 푸르고
기러기 발톱 흔적처럼 글자는 이끼속에 또렸하다.
미로(迷路)처럼 바위를 경배하니 외물(外物)을 천시한 증거요
도잠(導潛)처럼 바위에 취했으니 제몸 잊은 것을 알리라
부암(傅巖)과 우혈(禹穴)도 흔적조차 없어졌는데
무엇하러 구구하게 또 명(名)을 새기리오

정석(丁石)은 해배를 앞두고 그의 발자취를 남긴다는 뜻에서 초당 뒤 언덕바위에 선생님이 친히 새긴 것이다. 선생님의 정갈하고 꼿꼿한 기품이 느껴지는 글씨다.



옥정(玉井)이 흐레는 없고 모래만 깔렸으니
한바가지 떠마시면 찬하(餐霞)보다 상쾌하다오
처음엔 돌틈의 승장혈(承漿穴)을 찾았는데
도리어 산중에서 약닳이는 사람이 되었네
길을 덮은 연한 버들 비스듬히 물에 떠있고
이마에 닿은 작은 복숭아 거꾸로 꽃을 달고 있네
담도 삭이고 묵은 병도 낫게하는 약효는 기록할 만하고
나머지 또 길어다가 벽간다(碧磵茶)끓이기에 좋다오

초당의 왼쪽 뒤편에는 작은 옹달샘이 하나 있다. 1808년 다산선생님께서 직접 파서 만든 샘으로 이 물로 차를 끓여 마셨으며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시원한 약수 샘이다. '나는 하늘과 땅 사이에 홀로 서 있다'는 선생님의 절절한 고독은 약천의 물로 끓인 다산의 차로서 다스리며 다선(茶禪)삼매를 즐겼으리라.



푸른 돌 평평히 갈아 붉은 글자 새겼으니
차 끓이는 조그만 부뚜막 초당 앞에 있구나
반쯤다문 고기목 같은 아궁이엔 불길 깊이 들어가고
짐승 귀 같은 두 굴뚝에 가는 연기 피어나네
솔방울 주어다 숯 새로 갈고
매화꽃잎 걷어내고 샘물 떠다 더 붓네
차 많이 마셔 정기에 침해됨을 끝내 경계하여
앞으로는 단로(丹爐)를 만들어 신선되는 길 배워야겠네

초당 앞마당에 종아리 높이까지 오는 크고 넓적한 바위가 하나가 놓여 있다. 다산선생님께서 솔방울을 지펴 차를 끓이던 부엌이다. 뒤꼍 약천에서 맑은 물을 떠다가 앞마당 다조 위에서 솔방울을 지피며 차를 끓여 마셨던 선생님은 유불(儒佛)이 하나이며 다선(茶禪)이 하나이며 물아(物我)가 하나임을 즐겼을 것이다.



갯가의 괴석 모아 산을 만드니
진짜 산보다 만든 산이 더 멋지구나.
가파르고 묘하게 앉힌 삼층탑 산
오목한 곳 모양 따라 한가지 소나무를 심었네
서리고 휘감긴 묘한모습 지봉석을 쭈그리고 앉힌 듯
뾰족한 곳 얼룩 무늬 죽순이 치솟은 듯
그 위에 산 샘물을 끌어다 빙둘러 만든 연못
물밑 고요히 바라보니 푸른 산빛이 어렸구나

초당 오른편에는 작은 연못이 하나 보인다. 이것은 다산선생님께서 바닷가의 돌을 줍고 연못을 파서 연과 잉어를 키우고, 물 가운데는 석가형상의 돌을 놓아 연지석가산이라 이름하였다. 얼마전 비가 온 듯 연못의 물은 흙탕이다. 그러나 가만히 바라보노라면 석가산은 또 하나의 세계가 물 위에 떠 있는 듯하다. 초의선사의 [다산초당도]에 따르면 이 연지의 물은 지금은 없어진 초당 축대 아래의 또 다른 작은 연못을 흘러가고 있다.